2022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창사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발표한 쿠팡, 적자 유니콘의 흑자 전환이 던지는 화두
지난 11월 9일 쿠팡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022년 3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발표하였습니다. 올해 상반기 실적 추이를 볼 때 빨라도 올해 말에서 내년 초로 예상되던 흑자 전환이 앞당겨지면서 상장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주가 또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입니다.
쿠팡의 3분기 실적 결과를 반영하여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한 JP Morgan (보고서 클릭)
유니콘 기업의 적자 이슈는 항상 뜨거운 감자입니다. 언제 돈 벌거냐는 비아냥에서부터 계획된 적자도 전략이라는 옹호론까지 늘 의견이 분분한 영역이죠. 특히 지난 13년 간 성장을 최우선에 두는 실리콘밸리의 전투적인 '블리츠 스케일링'에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반성론과 맞물리면서 이제는 대규모 적자를 수반하는 성장 전략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도 제기됩니다.
쿠팡은 성장성만 담보된다면 적자 유니콘도 얼마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미국 시장을 상장 시장으로 선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금리 인상 및 시장 폭락이 이어지며 현재의 주가는 공모가 $63.50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하락한 상황입니다. 실적 공시 이후 주가가 7% 이상 급등한 것은 흑자 전환에 의미를 부여했다기 보다는 추정치를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에 시장이 반응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쿠팡의 흑자 전환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하지만 적자 유니콘이 즐비한 미국 시장에서 쿠팡의 뉴스가 그리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과연 쿠팡이 달성한 '적자 유니콘의 흑자 전환'이 미국에서는 대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미국 테크기업의 80%는 적자 상태로 상장에 성공합니다
국내 거래소 상장 시 기업의 흑자 여부는 상당히 중요한 지표입니다.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거래소의 입장에서는 이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흑자 여부를 고려하기 때문이죠.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적자'가 상장의 '결격' 사유라는 관점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적자' 상태의 플랫폼 기업 상장에 대한 기사들은 대부분 이러한 관점을 내재하고있는 워딩을 사용합니다.
반면 기술주와 성장주의 비중이 점점 커져가는 미국의 경우 기업의 적자 여부가 상장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투자자 보호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불법 행위는 엄단해야 하지만 투자 그 자체는 각자의 판단'이라는 시각이 깔려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수요가 높다면 적자라도 얼마든지 시장에 올라와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 시장입니다. 지난 달 상장에 성공한 인텔의 자회사 모빌아이를 보더라도 회사는 적자에도 불구, 현재 30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매년 미국 테크기업의 IPO 통계를 작성하는 Jay Litter 교수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기술기업의 대다수는 적자 상태로 공모를 진행합니다. 상장 당시 적자라는 것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시장이 바로 미국입니다.
2021년 미국 시장 상장 테크 기업 중 21%만이 상장 당시 흑자 상태 기록
미국의 경우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상장에 나서는 테크 기업의 70% 이상이 흑자 기업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중은 닷컴 버블이 정점에 도달한 '99 - 2000년 14%까지 떨어진 바 있으며, '08 - '09년 금융위기 동안 적자기업 상장이 자취를 감추며 흑자 기업 비중이 60% 이상으로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링크드인과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들의 상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3년 이후부터는 다시 해당 비중이 20% 수준으로 하락한 바 있습니다.
지난 30년 간 미국 지표를 통해 몇 가지 흥미로운 패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적자 기업의 상장이 용인되는 분위기는 경기침체 등 거시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경기가 불황에 진입하면 적자 기업의 상장도 덩달아 감소하게 됩니다.
2013년 이후 상장에 나선 테크기업 열개 중 일곱 곳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 시장의 지수를 이끌고 있는 대표 기술주인 테슬라, 메타, 세일즈포스, 스퀘어와 같은 종목들도 모두 상장 당시에는 적자기업이었으며, 상장 이후에도 상당 기간 적자 상태를 이어왔습니다. 그렇다고 시장이 상장 이후 기업의 적자 상태를 마냥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투자자들은 적자 기업의 어떤 지표에 집중하는 것일까요?
주가는 아직까지 이익률과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2019 - 2021년 사이 상장에 성공한 소위 '대어'에 해당하는 조 단위 테크 기업들은 아직까지 분기 단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상장 후 6번 째 분기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쿠팡의 성과는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장 유니콘 기업들은 여전히 분기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쿠팡의 성과가 주가에 반영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쿠팡이 상장했던 2021년 1분기에는 팬데믹 효과로 기업가치 고평가가 가능했던 측면도 있고, 그 이후 금리인상과 함께 시장 폭락이 이어지며 소위 성장주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기업가치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시장 폭락에도 불구, 에어비앤비와 스노우플레이크는 공모가 이상에서 주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0년 말에 상장에 성공한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공모가 이상의 주가에서 거래된다는 점에 비춰볼 때 회사의 영업이익이 주가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2022년 3분기 영업이익률이 42%까지 치솟으며 분기에만 조 단위 현금흐름을 창출하고있는 에어비앤비의 주가는 여전히 공모가 대비 60% 이상 상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익률이 개선되는 속도와 규모입니다
최근 월가에서는 Path to Profitability라는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당장 흑자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지 몰라도 흑자 달성을 위해 이익률이 꾸준히 개선되는 지표는 중요하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실제로 시장은 지금 당장 이익률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보다는 이익률이 꾸준히 개선되는 트렌드, 그리고 그 속도와 규모에 더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적자 기업이더라도 이익률 개선 폭이 크다면 주가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업이익률이 개선되는 폭과 상장 이후 주가 변동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여전히 분기 영업이익률이 -42%에 달하는 스노우플레이크의 경우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 상장 시점의 분기 영업이익률 -105% 대비 마진율이 개선되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미국 음식배달 1위 도어대시 또한 최근 영업이익률은 -18%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상장 당시 -31% 영업이익률에 비교해보면 마진율이 대폭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에 비춰볼 때 쿠팡의 흑자 전환이 시장에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타이트한 이커머스 마진 구조 상 시장 1위에 올라서더라도 획기적인 이익률 개선이 어렵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쿠팡의 영업이익률은 상장 당시인 2021년 1분기 -6.4%에서 22년 3분기 1.5%로 7.9% 개선된 수준에 불과합니다. 시장이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과 페이스북처럼 독점적 시장지위에서 나오는 현금창출력에 프리미엄을 부여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쿠팡이 예전 수준의 주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은 장기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마존은 닷컴버블 당시 최고가였던 주당 5불의 주가를 넘어서는데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가가 레벨업에 성공하며 빅테크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시장 선점에 성공한 클라우드 서비스 AWS가 조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입니다.
아마존 주가 상승의 90% 이상은 2010년 이후 AWS 성공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쿠팡이 꼭 아마존처럼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품을 직매입하고 직접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Asset-Heavy' 모델이 가지고 있는 단점 또한 명확해 보입니다.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거래를 중개하는 여러 플랫폼 대비 이익률수준 및 움직이는 폭이 절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쿠팡은 당분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신사업 보다는 해외 진출에서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처럼 아마존의 영향력이 미미한 일본과 대만에서 쿠팡만의 강점인 로켓배송을 이식하기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여러모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숙명을 가진 쿠팡이 아마존과는 다른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